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힘들었던 나의 봄을 이제야 보내며

두 번째 픽은 뮤지컬 '팬레터'의 넘버 '내가 죽었을 때' 입니다. 저는 2019년에 올라온 '팬레터' 공연을 봤었는데요, 올해 말 쯤 이 공연이 돌아올 계획이라고 해요.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, 소설가 김유정과 8인회를 모티브로 한 문학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극인데, 다른 것보다 넘버가 정말 까무러치게(!) 좋아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.

'내가 죽었을 때'라는 곡은 동경하던 소설가 김해진이 세상을 떠난 뒤, 그의 파멸을 지켜봤던 주인공 세훈이 부르는 곡인데요. 극 초반에 세훈은 해진에게 히카루라는 이름으로 팬레터를 보내요. 서로의 글과 고민을 알아본 세훈과 해진은 영혼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, 해진이 히카루를 여성이라고 착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.

히카루는 세훈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요. 여자 배우가 연기하는 만큼, 성별 반전이 가져다주는 관념캐릭터의 새로운 매력을 가득 느낄 수 있어요. 초반에 주인공 세훈과 닮은꼴이던 히카루는 점차 해진의 영혼을 좀먹으며 괴물같은 존재로 자라나고, 결국 해진을 망쳐버리죠. 세훈은 변해버린 히카루가 바로 자신임을 깨닫고 혼란에 빠지게 돼요. 그 모든 과정을 거쳐, 해진의 마음을 편지로 확인한 세훈이 부르는, 마지막 남겨진 노래입니다.

세훈이는 사실 이 곡을 꽤 담담하게 불러내는데요. 뭐랄까요 가사를 듣고 있다보면, '뿌리를 잘못내린 듯 / 아무도 축복하지 않았지만 / 그래도 봄은 아름다웠다' '내 사랑이 죽었을 때 내 청춘도 죽었고 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/ 나의 봄을 이제야 보낸다'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눈물이 흐르고 마는 것 같아요. 누구나 공감할 만한 첫사랑의 생경하고 낯설었던 감정, 소중한 걸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들이 표현돼있는 느낌이죠. 게다가 정말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묘사돼있어서 정말 좋아하는 곡이랍니다. 오는 11월 '팬레터'의 개막을 기다리며, 힘들었던 우리의 봄을 보내며. 저와 함께 들어보실래요?